작가 블로그를 소개합니다. 미술에 관한 다양한 시각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ryu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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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1 수요일, 엊그제 9일부터 갤러리에서 그리기가 시작되었다. 밤에 그림을 그려서 낮 동안 전시하고 다시 밤에 그리고를 반복했다.
2006.10.12, 54x38.8cm, charcoal on paper
2006.10.12 목요일, 현대무용 하는 청년과 마주했다. 조각상을 닮은 184cm의 건장한 체격을 지녔다. 나보다 크다. --;; 가쁜 호흡으로 공기를 태우듯이 그려보자. 갤러리에서의 작업이 색달랐다. 충분한 조명과 깔끔한 벽면이 집중도를 높여주었다. 무엇보다 그림이 잘 보였다.
2006.10.12, 109x78.5cm, charcoal on paper
2006.10.14 토요일. 저녁 10시. 큰 그림에 먹을 올리기 시작해 밤새 마무리 했다. .......
2006.10.5 목요일, 미끈거렸다.륮 2006.10.5 1532, 76x56cm, watercolor, ink, conte on paper
2006.10.3 1437 용미리, 26x37cm, ball-pen & watercolor on paper
2006.10.3 화요일,그새 이름 모를 야생화가 봉분 위에 툭툭 자라났다. 최근 3, 4년 새 외숙모와 외숙부, 외할머니가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외갓집은 경남 쌍책의 외딴 시골마을이다. 망자와 함께 사는 우리네 풍습에 따라 마을 어귀와 마을 뒤편 양지 바른 곳에 차례로 묻었다. 정작 자식들은 도시에 산다. 고향마을에 살면 오며 가며 묘에 풀도 뜯고 볕이 들도록 나뭇가지도 치면서 돌볼 수 있으련만. 도시중심의 사회에서 망자는 공동묘지에 산자는 아파트에 수용되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선가 나타난 묘지 관리자와 이런저런 이야.......
2006.10.1 일요일, 부재의 현존. 레비나스의 불면. 의식은 있되 행동은 가능하지 않고 잠의 나락으로 떨어지지도 않는다. 깜깜한 밤에 무엇도 확인할 수 없지만 나는 있다. 부재하지만 현존한다. 생멸의 사이에 낀 이 현존은 부재에 대한 변증법적 대립 항이 아니며 관념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런 매개 없이 현존한다. 생물을 지향하는 회화의 시작점이자 막다른 벽도 이와 같다.
눈앞이 나를 본다. 그를 마중하지만 매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매순간은 이미지로 대체된다. 이미지는 곧 힘의 장이다. 에너지의 발생처소다. 최초의 자유가 거기 있다면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시작의 자유일 것이다.
만.......
2006.9.29 금요일, 어제 오후에 태백으로 향했다. 3시 15분경 길음동에 들렀다가 다시 내부순환도로에 올랐는데 양평방향의 갈림길을 깜빡 지나쳤다. 하는 수없이 성수대교를 타야하는데 꽉 막혔다. 껴들기를 포기하고 강북강변로를 타다가 한남대교를 건너려 했지만 진입로가 안 보였다. 차는 도로 일산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일산에서 출발했는데 말이다. 동부 이촌동으로 꺾어 들어가 어찌어찌 한강대교를 건너려 했는데 가다보니 남산타워가 보였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이 임계점에 다다랐다. 마음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차는 차가 가는 거다. 나는 나대로 가자. 이태원을 지나 사고 난 차량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다 앞차가.......
2006.9.25 월요일,
중화리 (문인수)
대숲 대나무 꼭대기에 까마귀 떼가 시꺼멓다.
대나무들 우듬지가 휘청휘청 몸부림치며 날아오르려 하고 까마귀들, 커다란 열매처럼 한사코 주렁주렁 자리 잡으려 한다. 풀리지 않는다. 이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지 까마귀들 제 날개에 붙어 한꺼번에 후다닥 가볍게 떠 날아가고, 대나무들은 또 제 뿌리 짬으로 붙어 일괄 시퍼렇게 와스스 돌아온다. 에라, 마음 비운 것처럼 생멸처럼 어느 명절 끝처럼 결국
만사 해결된 것처럼 고요하다. 이곳 역시 노인들만 사는 마을,
중화리. 없는 것 빼고 컹 컹 컹 컹 다 있다.
경기도 광주 중대리 마을에서 신접살림을 살았다.......
2006.9.24 일요일,
“사물의 외형이 어두운 밤 속에 감추어져 버릴 때, 그 때는 아무 대상도 아니며, 대상의 성질도 아닌 밤의 암흑이 우리를 점령한다. 우리를 점령한 그 밤의 무를 우리는 도무지 견뎌맬 수 없다. 그러나 무는 무 자체가 아니다. ‘이것’ 혹은 ‘저것’이라 부를 수 있는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부재는 곧 ‘현존’이고, 그것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현존이다. 이 현존은 부재에 대한 변증법적 대립항이 아니며 관념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는 아무런 매개 없이 현존한다. 그것에 대한 어떤 언술도 없고, 아무것도 우리에게 답해 주.......
2006.9.22 토요일, 보양식으로 뱀은 3천 마리, 개와 염소는 30마리를 먹어야 효험이 있는데 대신 죽기가 어렵단다. 몸의 기능이 다했는데도 정작 숨이 끊어지지 않아, 끊어지지 않는 숨을 꺽꺽거리며 죽을 때까지 쉬어야 한다면.. 끔직한 일이다. 동물은 배부르면 먹지 않고 죽을 때가 되면 죽는다. 인간은 배가 불러도 비축하고 죽지 않으려고 버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권력을 낳는다. 종교권력이 그렇고 국가의 권력이 그렇다. 죽음과 죽임으로부터 구제받고 보호받는다는 조건으로 부여받는 힘이다. 자본주의는 죽음까지 돈으로 환산한다. 보험이 그렇다. 그냥 죽음에 순응한다면? 권력은 없다. 륮
2006.9.17 일요일, 철암그리기2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이경ㅎ 선생의 화제가 판옵티컨 개념으로 옮아갔다. 반원형의 수감시설 꼭짓점에서 간수는 죄수를 한눈에 감시한다. 돌구지 사택지가 딱 그렇다. 안마당까지 잘 보이게 배치되었다. 그에 비하면 산비탈에 지어진 월천동이나 전차동의 판잣집들은 전망 좋은 곳에 얼기설기 엉켜 있어 누구네 집인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철암천변에 까치발을 딛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도 예측을 불허하기는 마찬가지다.
철암 들어가는 길에 수갱 탑을 보러 갔다. 수직으로 갱도를 파고 30미터쯤 되는 거대한 철제 탑을 세워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탄을 운반하는 채탄시설이다.수갱.......


